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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수컷의 의무



밤 늦은 시각에 좁고 으쓱한 길(골목길 포함)을 걷다 보면 간혹 내 앞을 앞서가는 처자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살짝 난감함을 느낀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계속 걸어가자니 앞서가는 처자가 지속적으로 불안함을 느낄 것 같고, 그 불안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지나치려고 해도 마찬가지로...아니, 더욱 더 불안을 일으키게 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저 남자가 나를 덮치려고 접근하고 있어!'). 그래서 앞으로는 이러기로 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 다음, 뒤에서 "좀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밝힌 뒤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버리자고.


지하철에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간혹 바로 앞에 짧은 치마의 처자가 있을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대개 나의 시선은 음란마귀가 지시하는 방향에 아주 적절한 각도를 유지하게 된다. 대부분의 처자들은 음란마귀의 마리오네트 인형에 불과할 수도 있는 수컷들의 처절한 처지를 익히 알고 있는지라, 지니고 있는 핸드백으로 시선 차단에의 방벽을 치고는 한다. 그 처자가 설령 자신의 그러한 행위가 시선 강탈의 형식으로 금지된 관음적 욕망에 더욱더 불을 지피게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있다손 치더라도 그녀로서는 그 이외의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을 테다.

이런 경우 방벽 너머를 넘볼 수 없는 '진격의 수컷'은 목표했던 지점 이외의 다른 부위로 아쉬움을 달랜다. 그보다 더 진화한 수컷이라면, 집에서 몰래 컴퓨터 하드 안의 은밀한 것을 들춰볼지언정 이런 상황에서 음란마귀에 굴복함으로써 인간적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수치로 여겨 시선을 옆으로 돌릴 거다.



음란마성(淫亂魔性)의 시선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 :
20년 전 얘기다. 다리가 예쁜 걸 자랑이라도 하듯 종종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곤 하던 수지(가명)라는 처자와 H대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그 카페에는 의자 대신 소파가 놓여 있었다. 위험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채로 소파에 앉게 되면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쑥 꺼지면서 허벅지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대퇴부와 나의 시선은 정확하게 일직선상 위에 놓이게 되는 거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게 되면ㅡ그리하여 무릎과 무릎 사이가 조금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못 볼 것을 보게 되는 상황이다. 테이블은 그녀의 하체를 가려주지 못했는데, 상판이 투명한 유리 재질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자기방어에 대한 자구책은 의외로 치밀하다. 핸드백에서 색종이 크기로 접힌 손수건을 꺼낸 그녀는 참으로 절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판 유리 위의 한 지점에, 다시 말해 내 시선과 그녀의 대퇴부가 형성하는 일직선상의 중간 지점에 그 손수건을 놓아두었다. 놀랍다. 일개 손수건이 시선 차단용 바리케이트로 용도 변경될 수 있다니!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까? '눈을 절대로 아래로 깔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수차례 다짐했던 수컷의 이 기특하고도 가련한 의지를 일순간 무화시키는 저 불신의 바리케이트. 아, 억울하다!' 
(남자가 어떤 매력적인 여성을 바로 앞에서 대면했을 경우, 여성의 어느 부위로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게 될까? 이에 대한 실험도 있었던 모양이다. 데스먼드 모리스의 <맨 워칭>에 소개된 실험결과에 의하면 슴가와 입술이라고 하는데, 글쎄다. 실험자는 아마도 피실험자 여성의 하체 부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런 인간 수컷들에게 있어서 이성의 특정 부위를 향한 시선을 의도적으로 회피, 혹은 억제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억울함과 동시에 어쩌면 감탄했을는지도 모른다. 손바닥만한 바리케이트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저 고도의 민감성! '시선강탈자'로서의 여성의 위대함!



'묻지마 살인'의 현장인 강남에 나와서 추모의 글이 적혀있는 쪽지들을 죄다 뜯어낸 이유에 대해 일베충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모든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 아마도 이들은 성범죄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피력할 테다.
글쎄다. 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무형의 바리케이트를 경험한 바가 있지만, 책장에 수잔 브라운 밀러의 <성폭력의 역사>라는 제목의, 아주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한 책(원제는 'Against our will'으로서 성폭력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물리적 폭력을 다뤘다)이 꽂혀있는 나로서는 뭇 처자들의 온갖 자구책을 단순히 남자들에 대한 무조건적 적의에서 기인한 부당한 처사라고 판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형의 바리케이트는 구체적인 '나'에 대한 적의의 표출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편재하는 음란마귀 자체에 대한 경계라고 보면 된다(구체적인 '나'에 대해서 지나가는 처자가 알 게 뭔가?). 나 자신도 때로는 경계하는 내 마음속의 음란마귀를, 상대방 처자가 좀 경계하기로서니 그게 뭐 어때서?


(마음속에 있는 마귀가 어디 음란마귀 뿐이랴. 20여년 전에, 어떤 중년아저씨가 TV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법이라면, 저 새끼들 다 죽여버렸어." 내 마음속의 또다른 마귀가 움찔했던 순간이다.)


그러니까 골목길을 갈 때는 "좀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지나쳐 버리고,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는 좌측통행으로 앞의 처자를 앞질러 가버리면 그만이고, 여친이 테이블에 고이 접은 손수건을 놓아둘 때는 손수 손수건을 펴서 단면적을 넓혀주면 그만이다. 야심한 밤에 인적 없는 길 위에서 가상의 귀신 따위 이외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본 적이 없어 시선강탈자의 심경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수컷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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