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타 보는 기차.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사색에 빠져 차창 밖 먼 곳을 바라보곤 했던 그 옛날에는 승무원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던져주며 지나가곤 했다. "삶은 계란이나 사이다~"
(썰렁...)
언젠가 한 여자 인터뷰어가 김훈 작가에게 삶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거창한 질문을 싫어합니다." 우문현답이다. 차창 밖을 뚫어지게 응시해 봤자 풍경들은 삶이 뭔지 안 가르쳐준다.
원주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려니 거리가 다소 어중간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한다. 택시 타고 가기에는 너무 가깝고 걸어가자니 조금 멀다.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걸어가기로 한다.
역전 삼거리에서 거리상으로 제일 가까울 것 같은 가운데의 언덕길로 향했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도중에 어여쁜 젊은 처자가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시해버렸으나 잠시 후 또 다른 처자가 말을 건다. 아, 귀찮다. 예나 지금이나 이 놈의 인기란....
문득 어젯밤에 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 먹고 가실래요?"라고 말하던 이영애가 떠오른다. 역전의 그녀들은 라면 대신 놀다 가시란다.
그렇게 치맛자락을 뿌리치며 홍등의 밤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