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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불교는 왜 진실인가

 

 

근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불교는 왜 진실인가>이다. 딱딱한 종교철학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의 진솔함과 위트가 돋보이는 꽤나 물렁물렁한 과학서(진화심리학)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를 읽다가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주차선을 넘다 못해 차의 정 중앙에 주차선이 위치한 채로 주차해 놓은 어떤 차를 보고 내가 말했다.
"뭔 주차를 저 따위로 하냐? 정말 남 생각 안 하고 사는 인간이네."
원주 현자 음해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게 아니라 저 차의 앞뒤에 있었던 차들이 먼저 주차선을 넘어서 주차한 거겠지. 저 차는 그 사이에 주차하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저렇게 주차선 한가운데에 주차하게 된 거고. 앞뒤 차가 다 빠져나가버리니까 저 차가 일부러 저렇게 주차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아주 오래전, 2층 자취방의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시었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봐.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엑스트라로 보이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스스로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엑스트라로 생각하면서 사는 게 좋아."

오오....약관의 나이에 선생은 이것을 깨우쳤단 말인가.
내가 괜히 현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불교는 왜 진실인가>의 큰 줄기는 대충 이렇다.
'자연선택'은 종의 진화를 위해 (붓다가 설한)'탐진치 삼독'이라는 미망에 빠지게끔 인간을 설계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트릭스라는 미망의 세계에서 욕망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일부 사람들만이 '빨간 약'을 먹고 실재를 보게되는 거다. 이를 니르바나, 혹은 해탈이라고 한다지.
고로 우리가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을 '당위'로 여긴 채 살아가는 한, 평생 'ㅆㅂ'소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 밥숟갈을 놓게 될 테다. 그러니 자연선택이라는 자연법칙에 반(反)하는 게 깨달음의 길이고, 명상이 그것을 점진적으로 해결해 줄 거다.

 

문득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만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란다. 사랑은 잘못된 설계 원칙의 산물인 혈통이 나쁜 생명체도 인정하는 것이야.(...) 우리가 우리에게 혹은 무엇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한 행동들은 우리를 형성한 법칙의 정신에 도전하는 것이야. 악보다 선을 더 중시한다면 우리를 형성한 법칙에 도전하는 것이지.(...) 법칙을 거부하는 것은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오직 거부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단다.(...) 정말로 우리를 만든 신이 있다면 모든 사랑은 그 신에 대한 전쟁일 거야."

 

악어에게 잡혀먹히는 얼룩말을 보면 '신에 대한 전쟁'이라는 표현에 이해가 갈 법도 하다고, 족발을 뜯어먹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침에 교회를 다녀온 뒤에 <불교는 왜 진실인가>를 읽으며 짠~한 울림을 느끼고 있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면 아마도 내부가 비치지 않는 카페의 마담이 보고싶어질는지도 모른다.
잡탕 같은 인생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 없다. 이것은 다음을 증명한다.

지식은 다 필요없다. 깨달음이 전부다.
혹은,
지식은 다 필요없다. 믿음이 전부다.
..................................................

 

 

어떤 인간이(10초 전에 '개자식'이라고 쓰다가 지워버렸다) 내 차 바로 앞에서 위협 운전을 한다. 나는,
'이런 ㅆㄴ의 ㅅㄲ가....'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옆 자리에 후배가 있는지라 참기로 한다. 그때 후배가 운전대로 손을 가져가더니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한마디를 던진다. "뭐 저런 ㅅㄲ가 다 있어!"
나는 배운대로 유체이탈을 행한 뒤에 열받은 나의 모습을 위에서 관찰한다(다시 말해 분노라는 감정을 응시한다). 그랬을 때 내 입에서 '시발놈' 대신,
"뭐, 지금 똥 마려운가 보지."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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