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이야기

소해금 이야기

 

 

 

‘소해금’이라는 악기가 있다. 전통악기인 해금을 60년대에 북한에서 현대적으로 개량, 보급한 악기다. 오동나무로 만든 울림통에 마치 바이올린과 같은 네크(Neck)를 부착하고 현도 4현까지 늘렸다. 국내에서는 탈북자 출신인 박 성진이 유일한 연주자일 정도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재일교포 중에 극소수의 연주인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악기다.


필자가 재일교포 연주자 하 명수의 음악을 접한 것은 뮤지션이자 체크뮤직 대표인 K 군의 덕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처음 접한 그의 음악에 이내 매료된 그는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의 인터넷 음반 매장까지 검색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고, 결국 SNS를 통해 하 명수 씨와 접촉하여 직접 음반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소해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하 명수와, 그의 부인이자 역시 명 소해금 연주자인 윤 혜경 , 그리고 피아노 연주에 능한 보컬리스트이자 작편곡자인 이 릉향(그녀 역시 재일교포다)이 주축이 되어 제작한 그들의 2집 음반 ‘Asia monsoon'을 듣고 나자 한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양질의 작곡과 연주, 그리고 레코딩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해당 음반이 어째서 일본의 주류 음반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어째서 한국에서는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이토록 무명인 것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떠올랐지만 우선적으로 그들의 일본사회 내 위상과 소해금이라는 악기의 비주류성이 중첩되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그들의 음악을 알릴 당위가 있다고 판단한 K 군과 필자는 2013년 6월 7일, 몇 안 되는 연주자들 중 단연 독보적인 활동을 펴고 있는 하 명수를 만나기 위해 도쿄의 시부야로 향했다.

위로 전철이 지나가는 특이한 구조물의 1층에 위치한 주점 ‘鳥金(とりきん)’은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열다섯 평 남짓한 곳인데, 웬만한 한국의 음식점에서 요리한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하 명수로부터 소해금 연주자로서의 긍지와 책임감, 그리고 애로사항 등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대중성에 온전히 영합하지 못하는 대개의 비주류 음악인들처럼 그에게도 자신의 음악이 보다 두루 알려지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이 엿보였지만, 그보다는 비주류 악기인 소해금이 영속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가까운 미래에 소위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감이 더 커보였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실력 있는 연주가는 열 명이 채 안됩니다. 우리 같은 소해금 연주가들은 주법과 표현을 개발하고 연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악기의 계승을 위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과 많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주력을 두어야만 하죠.” 하 명수의 말이다. 또 하나의 걱정은 제작가의 부재에 관한 것이다. 실력 있는 소해금 제작가가 극히 드물뿐더러 그마저도 북한에 집중되어 있는 탓에 폐쇄적인 그곳으로부터 악기를 들여오는 일조차 요원하다고 한다.


진지한 예술인이 그러하듯, 하 명수에게 소해금은 소위 명성이나 생계에의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소해금은 자기완성은 물론 계승이라는 대승적 차원의 사명감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궁극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가 전혀 무의미한 일이 아님은, 소해금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표현력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능히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튿날, 시부야의 유명 라이브 하우스가 운집해 있는 거리에 위치한 '게이트웨이 스튜디오(Gateway studio)'에서 그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하 명수와 이 릉향, 그리고 퍼커션(주로 카혼) 연주자인 미노루 토요다의 라인업으로 30여 분 간 지속된 이들의 진지한 협연은 마치 이름 없는 보석을 조탁(彫琢)하듯 섬세함으로 가득했다. 찰나(刹那)의 악음(樂音)조차 방심하지 않으려는 하명수의 집중력 있는 연주 모습과 ‘와타라세(わたらせ)’에서의 애절한 소해금의 선율은 아직도 감각에 선연하다. 마치 “그것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하나의 모습, 귀를 막아도 들리는 하나의 노래”라고 노래한 칼릴 지브란의 시구(詩句)처럼.

 

스페인의 사상가이자 문명사가인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 1882~1994)는 “피아노의 노래는 이야기이며, 첼로의 노래는 비가(悲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그가 소해금의 노래를 들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바이올린 G현의 애수가 동양의 정감으로 재현되는 새로운 비경(祕境)’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소해금은 서양의 찰현악기가 가진 범지구적 보편성과 농밀한 한국적 정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악기라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그러나 이것은 ‘타협’이라든가 ‘절충’이라는 어중간한 말로 요약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양자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각자의 장점이 이루어내는 공생의 관계를 결코 배반하지 않는 결연한 지점에서 마주하기 위해 탄생되었다고 봐야 하리라.

 

60년대 북한의 주도 하에 개량된 악기인 소해금. 순수 음악예술에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주홍글자를 인각(印刻)하는 우매함으로부터 자유스럽다면, 이 악기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얼굴  (0) 2013.10.11
All out of love  (0) 2013.10.02
Last in love  (0) 2013.09.29
음악의 인위성에 대하여  (0) 2013.08.31
간만에 곡을 쓰다.  (2) 201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