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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영화 <졸업>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일단 욕부터 먹는 소재가 있다. 하나는 '조폭'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불륜에 관한 거다. 물론 뚜껑을 열기도 전에 비난하는 건 평론가들이 아닌 일반 관객들이다. "또 조폭 영화야! 지겹거든?" 뭐, 이런 식이다.
그들의 이런 반응은 선입관이겠지만, 한정된 소재에의 식상함에 대한 나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는 질타이기도 하다.

특히 치정이나 불륜을 소재로 한 것들은 그 비춰지는 모습들의 비루함 때문인지 소재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쩔 것이랴. 폭력과 치정은 지구가 끝나는 그날까지 이어질 흥밋거리인 것을. <사랑과 전쟁>이 괜히 오랫동안 방송되는 건 아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으로 시작(詩作)을 할 때는 가능하면 사랑을 소재로 선택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만큼 상투적이기 쉽상이니 신중하라는 말이다. 

치정이나 불륜은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무릇 사람들에게 없잖아 있는 것도 어쩌면 릴케의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흔한 것은 예술의 개성을 말살한다, 치정극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거나 참신함이 결여된 변주에 불과하다…뭐 이런 관점인지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도덕적 강박증 때문은 아닐까? 예술의 소재로 삼기에는 치정이나 불륜이 지나치게 속악하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예술의 고상함과 치정의 속악함은 공생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치정의 속악함과는 상관없이 <적과 흑>이나 <보봐리 부인>, 그리고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명작으로 회자된다는 점이고, 중요한 건 어떤 소재를 선택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흔한 소재의 특성있는 변주에의 여부가 아닌가.


 

 

 

 

대개 범상한 치정극으로 끝나고 마는 이런 소재의 여타의 작품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1967년도 영화 <졸업>은 '특성 있는 변주'의 한 전범이라 할 만하다.  Simon & Garfuncle의 <Scarborough Fair>라는 곡을 듣다가 문득 연상이 되어서 다시 한번 보니  46년 전 영화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풀장의 잠수 씬과 대비되는, 수면 위에서 부유하는 씬의 상징적 의미도 그렇고, 한 장면처럼 이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 급격한 공간의 전환으로 세월의 흐름을 포착한 것도 그렇다. 특히 마지막 씬―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만 분)이 결혼식장에서 신부(新婦)인 일레인(캐서린 로스 분)을 탈취(?)하는 씬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인상적인데, 벤자민이 십자가를 휘두르며 결혼식장에 모인 기성세대의 꼰대…아니 어른들을 교회 안에 가두는 장면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불륜이라는 외연보다는 내포된 어떤 의미에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한가지만 부언하자면,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에서 일레인과의 관계로 전환되어 가는 것에서 윤리성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찾는 건 아마도 연목구어(緣木求魚)일 테다. 제목인 '졸업'이 말 그대로 벤자민의 대학 졸업을 의미하는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기성세대의 물신주의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어쩌고 하며 영화 평론을 할 생각은 없다. 평론은 내 몫도 아닐 뿐더러 그럴 주제도 못 된다. 그보다는 훨씬 더 대수롭지 않은, 몰라도 그만일 하찮은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2308&cid=669&categoryId=1391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8년 가을, W시(市)의 한 극장에서였다. 1967년에 제작된 영화를 약 20년 후에야 보게 된 셈이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 거기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에서야 비로소 개봉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개봉을 하게 된 데에는 물론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검열위 때문이었을 거다.

신중현의 <미인>이 '퇴폐풍조 조장'이라는 명분으로 금지곡 처분을 받은 게 1975년이고, 하길종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체제 반항적'이라는 이유로 소위 '가위질' 당한 것도 그 비슷한 시기다. 서울올림픽대회가 열린 1988년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군인 아닌 소위 '보통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던 시절이었지만, 롹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여전히 금지곡이었을 정도로 '참으로 도덕적인' 시절이었다. 그러할진대 '어떤 유부녀의 정부(情夫)였던 한 젊은이가 그녀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었겠는가. 

 

개나 소나 다 알만한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한 로빈슨 부인은 동업자의 아들인 벤자민을 유혹하려 한다. 순박한 벤자민은 이를 뿌리치려 하지만 결국 발기…아니 혈기를 누르지 못하여 유혹에 굴복하고, 숫총각 딱지를 뗀 이후엔 점차 그 분야의 선수(?)가 되어 간다. 이후 벤자민은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반(半)강제적으로 로빈슨 부부의 딸인 일레인과 데이트를 가지게 되나 최초의 거부감은 언제 그랬냐는듯 금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를 알게 된 일레인은 벤자민을 멀리한다. 그녀를 잊지 못하는 벤자민은 일레인의 주변에 머무르며 관계의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로빈슨 부인을 강간했다는 내용의 충격적인 말을 일레인으로부터 듣는다. 물론 도덕적 책임 인가를 위한 로빈슨 부인의 거짓말. 아래의 화면을 보자.

 



 


 

 

 

 

 

 

 

 

 

 

 

일레인이 벤자민에게 "How could you possibly rape my mother?"하고 묻는 장면이다. 실제로 벤자민이 강간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여자 친구의 엄마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의 관계라는 설정은 참으로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었는지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검열위는 위의 대사를 다음과 같이 바꾸는 강수(强手)를 둔다.

 

"어떻게 내 고모를 강간할 수 있었냐고!"


헐
글타. '퇴폐 문화 척결'이라는 윤리적 사명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고군분투하던 1970년대의 전통은 1988년 당시에도 이어져 왔던 모양. 그리하여 미스터 로빈슨과 미세스 로빈슨은 각각 졸지에 일레인의 고모부와 고모로 탈바꿈하게 되고, 불순(不純)의 정도는 다소 희석된다. 여자 친구의 고모와 야합(野合)하는 사이…. 뭐 그 정도 쯤이야, (여자 친구의)Mother fucker가 되는 것 보다는…. 

그런데 검열위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을 너무 얕잡아 봤다. 나처럼 고등학교 영어 시험을 30점 맞았던 인간도 mother가 '고모'가 아닌 '엄마'라는 것 정도는 알 뿐더러, 그 정도 수준의 단어는 리스닝도 된다. 자막 수정으로 수작을 부릴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음성도 손을 봤었어야지. 다음과 같이 말이다.

 

 

'윤리적 강박의 시대'에 일어났던 하나의 헤프닝이었다.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은 역시 Simon & Garfuncle의  주옥 같은 사운드트랙에 기인한다.

특히 Scarborough fair라는 곡은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시절을 환기한다. 한번은 교회 친구였던 J양의 집에 놀러 갔다가 작은 책자의 기타 교본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 교본의 후반에는 <Autumn leaves>와 <Scarborough fair>의 악보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후 이 곡은 나의 애청곡이 되었고, 하루 종일 이 곡만 연주한 때도 있었을 정도로 즐겨 연주했다(1983년의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4강전, 한국 대 브라질 경기를 늦게까지 본 후 분패로 인한 억울한 마음에 동 틀 때까지 이 곡만 쳤던 일도 기억난다). 주로 나오는 Em7(11,13)코드의 몽환적인 울림과 도리안 모드의 멜로디는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 Additional music by : Dave Gru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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