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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스티븐 킹의 It 번역 비교

 

                  25주년 기념판, 스티븐 킹의 <IT> 삽화

 

 

나로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드라큘라>,<우먼 인 블랙>과 더불어 가디언紙가 선정한 세계 5대 공포 소설 안에 들어간다는 스티븐 킹의 <그것(It)>을, 90년대 초반의 번역판(D출판사)으로 보다가 그 오역의 파노라마에 뚜껑이 열릴 뻔했다. 그것들 중 일부를 얘기하자면,

 

 

1. Tosier를 ‘토저’가 아닌 ‘토지에르’로, Elmer를 '엘머'가 아닌 '엘메르'로, 그리고 Michael을 ‘마이클’이 아닌 ‘미카엘’로 번역해 놓았다. 등장인물들은 죄다 미국인 임에도.

게다가 ‘미카엘 한론’이 몇 장을 넘기면 ‘마이크 한론’으로 변신해 있다는 거다. 각기 다른 사람(형제)인줄 알고 보다가, 나중에야 같은 인물이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자기자신을 3인칭화(化)해서 독백하는 문장을, 그대로 3인칭의 타자에게 말하는 문장으로 번역함으로써 이런 착각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카엘(마이클) 한론'의 독백을 들어보라.

 

 

'만일 내가 마이클처럼 그런 전화를 한다면, 그 전화 또한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인물의 혼동이 없게 된다.

 

'만일 나, 마이클이 그런 전화를 한다면, 그 전화 또한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

 

 

더 웃긴 건 다음의 문장이다.

 

'때때로 프랭크엔스턴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잠시 화면을…'

 

‘프랭크엔스턴’이 뭔지 한참 생각했다. 바로 이거였다.

Frankenstein.

프랑켄슈타인이다.

‘미카엘’의 경우와는 달리 이건 대체 왜 영어式으로 읽은 걸까?

 

 

                                    <IT>의 삽화

 

 

2. 무성의한 번역도 문제다. 예컨대 다음의 문장들.

 

'아까와 다른 것은 나이트메어에 존재한다는 것뿐이었다.’

캐널에서 올라온 광대복 입은 미라의 소리가 들렸다.’

 

각각 ‘악몽’과 ‘운하’라고 해석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3. 무의미한 의미의 중첩이 너무 많다. 예컨대 다음의 문장들.

 

‘그 안에는 분명히 살아서 움직이고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것이 있었다.’

‘성병이 있는 문둥이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닮은 흡사한 것이었다.’

 

중언부언의 백미는 아래의 문장이다.

 

‘또 다른 기차를 타고 스스로도 모르는 알지 못하는 미지 옮겨 갔다.’

 

국어를 너무나 못하지만, 문장의 멋은 부리고 싶어하는 중학생이 작문한 것 같은 비문(非文)이다.  ‘모르는’, ‘알지 못하는’, ‘미지(未知)’……다 똑같은 의미 아닌가?

이런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

 

‘그때 에디는 캐널 운하 주위를 1시간 동안 거닐면서…’

 

아까는 Canal(운하)을 번역도 안 해놓더니 이번에는 ‘캐널 운하’란다.

어쩌면 역자는 열정의 패션을 다해 번역의 트랜스레이션을 하고자 했지만 번역할 당시에 건강의 헬쓰가 안 좋았을는지도 모른다….

 

 

                                         <IT>의 삽화

 

 

4. 정반대로 해석을 해놓은 날림 번역도 있다. 다음을 문장들을 비교해보라.
먼저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것부터.


킨 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빌이 그 미소를 봤다면 킨 씨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약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지 모른다. 그 미소엔 인간사에서 많은 의문점을 발견했지만 굳이 문제 삼을 가치는 없다고 자위하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에디의 천식 약을 카스브랙 부인의 장부에 달아 놓을 것이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고마움 보다는 의혹의 눈초리로 약값이 왜 그렇게 싼지 깜짝 놀랄 것이다. "다른 약은 비싼데 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킨 씨가 생각하기에 카스브랙 부인은 값싼 물건은 사람에게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에디의 수산화물을 더 비싸게 속여 팔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녀의 어리석음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목구멍에 풀칠을 할 정도로 구차하지 않았다.

 

다음은 90년대 초반에 출판된 D출판사의 것이다.

 

키니 씨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만일 빌이 그의 미소짓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가 좋은 사람, 즉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신의 생각이 역시 옳았구나! 하면서 자신의 추측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키니 씨는 '거짓'된 행동을 하였다. 소니아 카스브랙의 계산서 앞으로 에디의 천식 약값을 달아두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굉장히 믿기지 않는 듯 놀랄 것이다. '세상에나…이렇게 약값이 싸요?'라고. 그녀는 사람에게 좋은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마땅히 비싸야만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도 마찬가지로 천식을 앓고 있는데 간단히 조작을 한 것이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왜 그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그런 짓을 벌이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굶어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해둔다면 적절한 해답일 게다.

 

 

같은 텍스트인데 상반된 의미의 번역이다.
게다가 밑줄 친 곳의 문장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그 전의 '사람에게 좋은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마땅히 비싸야만 한다'는 문장은?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약'이 아니라 '사람에게 좋은 병'이라니.
이런 류의 이상한 문장의 예가 많지만 한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일단 <황금가지>에서 번역한 것을 보자.

"사타구니에서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죽은 매춘부와 닮았잖아요."

 

아래는 D출판사의 것이다.

 

"구데기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리는 기생충으로 꽉 찬 저주의 마을 같아요."

 

'구데기'에서 벗어나려는 기생충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일까? 기생충이 다 자랐을 때 과연 어떤 나방이 되길래.

이런 날림 번역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에디는 특히 북쪽으로 운송하는 포드나 쉐비스 같은 번쩍거리는 화물차들 행렬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나도 내 차를 가질 거야, 저것 같은.' 그는 혼자 다짐했다.

여기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앞의 문장을 보면 에디가 지켜보고 있는 '화물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쉐비스'는 대체 뭘까? '포드'는 알 것 같다. 자동차 회사 상표다. 그렇다면 포드에서 제작한 화물용 열차라는 말인가?  에디가 갖고 싶다는 '저것 같은' 차는 화물용 열차란 얘긴가?
<황금가지>의 것을 보면 위의 의문이 해소된다.

에디는 특히 번쩍이는 포드와 셰비가 실린 북부행 자동차 운반 열차 바라볼 때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저런 자동차를 탈 거야.' 열차를 바라보며 에디는 자신과 약속하곤 했다. 

 

남의 소설을 번역하기 전에 먼저 모국어부터 학습할 일이다.
참고로 '셰비(Chevy)'는 '쉐보레(Chevrolet)'의 애칭이다. '셰비'를 '쉐비스'라고 기재한 근거가 뭔지 잘 모르겠다. 셰비의 복수형?

 

 

                                                               <IT>의 삽화

 

 

 

5. 아예 번역을 생략해버린 것도 있다. 이것 역시 비교해 보자. 먼저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것부터.

 

그해 여름, 해거티는 그해 여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노라고 해럴드 가드너와 제프 리 브스에게 말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도 덧붙였다. 신이 행복의 양탄자를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깔아 준 이유가 어느 순간 확 잡아당겨 넘어뜨리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고.
딱 한가지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면 에이드리언이 지나칠 정도로 데리에 집착을 보였다는 것이다.

아래는 D출판사의 번역본이다.

하가티는 해롤드 가드너와 제프리 리브에게 말했다. 그해 여름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 중에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데리에 대한 아드리안의 열성적 지지만이 유일한 골칫거리였다고 말했다.

전자의 역자가 소설을 쓴 게 아니라면, 후자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든지 생략해 버린 것이 명백하다. 위트 넘치는 이 문장을 생략 또는 누락한 것만큼 소설의 재미는 감소한다.

또 다른 예를 찾아보자. 먼저 <황금가지>의 것.

전화를 안내하는 괴물이 지하 곳곳에 웅크린 채, 수천 개의 크롬 촉수마다 전화기를 움켜쥐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는 상상. 스파이더맨의 천적인 옥터퍼스 박사가 전화국 판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리처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디지털 귀신과 겁에 질린 인간 군상들이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는 거대한 발전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다음은 D출판사의 것.

수천의 촉각마다 수천의 전화를 달고 땅 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대한 전화교환국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리치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년 디지탈 귀신이 득실거리는 거대한 전자유령의 소굴로 되어 갔다. 그것은 인간들을 숨막히게 하면서 불안하게 살아가게 한다.

 

스파이더맨과 옥터퍼스 박사는 대체 어디로 간 거냐?

 

 

                                             만화책으로도 나왔나보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오역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오역을 넘어 날림 번역이라는 점에서 해도 너무한다. 게다가 오역 자체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할뿐더러, 비문이 1권의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역자가 번역 작업을 휘하의 학생들이나 아르바이트 학생(그것도 작문을 지지리도 못하는)에게 분담했을 거라는 혐의마저 든다(물론 감수는 생략한 채 그냥 출판했겠지).

자기 이름 석 자를 걸고 하는 건데…이러고 싶었을까?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기 위해 라틴어 공부까지 했다는 故이윤기 작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역자는 <역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2,000여장에 이르는 원고더미에서 혼자 중얼거린 말이 있다.

그것은실제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뇌까림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되려면 일단 자신의 모국어에 대해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된 내용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해서야 곤란하다. 구태여 지적하면 이렇다.

 

1. '원고더미에서'는 '원고' '원고지'로 써야 한다. '원고(原稿)'는 '인쇄하거나 발표하기 위하여 쓴 글'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더미'는 '많은 물건이 한데 모여 쌓인 큰 덩어리'를 의미한다. 글 자체는 '물건'이 아니다. 고로 '원고지 더미'가 맞다.

게다가 '원고더미'는 버스정류장이 아니다. 고로 '원고더미에서'는 '원고지 더미 앞에서'라고 써야 한다.

 

2. '난'은 '내가'라고 쓰거나 아예 생략해야 한다.

 

3. '실제로'는 쓸데없는 수식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것이 실제가 아닌 가상, 혹은 거짓이란 얘기는 아니잖은가. 게다가 '뇌까린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인 말인가? 이 경우, '실제로'라는 말이 무색해지지 않을까? 작가가 되고 싶다는 뇌까림 자체가 '실제'라면 몰라도.
어쨌거나 그것이 실제로 '뇌까림'으로 그쳤기를 바란다. 남의 작품을 난도질한 번역가는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

 

 

 

 

 

이렇게 가차 없이 지적질(?)을 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한 누구든지  비문을 쓸 수는 있다. 나 역시 그렇다. 허겁지겁 포스팅을 한 뒤 나중에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면 어색한 문맥이나 적절치 못한 어휘가 종종 발견되어 수정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라는 건 이렇게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다수의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라면 이래서는 곤란하다. 문장에 대한 둔감함으로는 자신의 글도 쓸 수 없고 좋은 번역도 할 수 없다. 완벽한 문장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구사할 수 없으면 퇴고(推敲)라도 성실하게 해야 할 텐데, 위의 텍스트에서는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도서출판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것(아래의 사진)을 보니 D출판사의 번역본과는 달리 꽤 재미있다. 결국 비문은 물론, 이해불가의 문맥을 남발한 날림 번역이 소설의 흥미를 반감시켰던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이걸 읽고 ‘유명하다더니, 스티븐 킹은 완전히 별로잖아!’라고 생각했을 독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다행인 점은 현재 절판되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점은 절판된 그것을 중고책방에서 샀다는 거다…). 역자의 문장에 대한 둔감함을 논하기 이전에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한참 먼 불성실함과 무책임, 그리고 원작자에 대한 배려와 예의의 상실은 어쩔 것인가

작가에게 형편없는 번역가란 일종의 '구더기에서 벗어나려고 꿈틀대는 기생충'일지도 모른다.

 

 


 

 

사족  : D출판사의 것에 비하면…,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그것에 비하면 월등히 낫지만,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것도 오역이 아예 없지는 않다. 아래의 글을 보자. 등장인물인 '엘머 커티'는 술집 주인이다.


 손님은 대부분 얌전한 젊은이들로 거개가 남자였다. 상당수가 기괴한 옷차림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옷차림이 유행으로 여겨지던 때라 엘머 커티는 1981년까지도 손님의 대부분이 호모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데리 주민들커티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며 누구를 바보라 아느냐고 눈을 흘겼지만 커티의 주장은 분명 사실이었다. 몰래 바람난 아내와 같이 사는 남자처럼, 그는 실제로 그 사실을 마지막으로 알았다.

밑줄 친 부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할 것이다.

 

커티가 데리 주민들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며 누구를 바보라 아느냐고 눈을 흘겼지만 데리 주민들의 주장은 분명 사실이었다. 몰래 바람난 아내와 같이 사는 남자처럼, 그는 실제로 그 사실을 마지막으로 알았다….

 

이런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18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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