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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잠들지 못한 밤

기다림 : 2008년 작곡, 녹음.

 

 

 

 

 내 마음속에서는 인간적이면서도 인간 이전인 악한 자의 어두운 태곳적 힘들이 존재하고, 내 마음속에는 또한 인간적이면서도 인간 이전의 찬란한 힘, 신의 힘들이 존재하니, 내 영혼은 그 안에서 이 두 군대가 만나고 투쟁하는 전투장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서문 중에서

 

 

 

  

 잠깐, 아니 꽤 오랫동안 잠들었다 눈을 뜨니 낮선 풍경들이었다. 버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으나 처음엔 그저 잠이 덜 깬 탓이려니 했다. 창밖을 오랫동안 주시했고, 머잖아 낮선 풍경들은 덜 깬 잠 탓이 아님을 깨달았다. 버스의 노선이 바뀐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버스가 생소한 건물 앞에 섰을 때 나는 두리번거리기만 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사 아저씨가 말했다. 종점이에요, 내리세요. 나는 버스의 상단 모서리에 길게 배치되어 있는 선반에서 가방을 내리고 밖으로 나갔다. 건물 상단에 <청주 고속버스 터미널>의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나는 엉뚱하게도 청주에 도착하고 만 거다.

 

 대략 두 시간 전의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 보았다. 나는 우리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서 W시 행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이 아닌 일반 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탈 수 있었던 건 통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버스회사 측의 배려 덕이었다. 그러나 시내버스처럼 배차 간격이 좁은 건 아니어서 시간을 잘못 맞추기라도 하면 꽤 오랫동안 정류장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뭘 기다린다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만약 일정한 직업이 없는 예비역 남자들에게 연봉이 5,000만 원일 경우 입대를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경기에 따라 다르겠지만)아마도 태반은 거부할 것 같다. 그런데 야간 보초 근무를 배제해 준다면? 아마도 재 입대를 원하는 이들의 수는 대폭 증가하지 않을까? 총을 든 채로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서있기만 하는 일은 확실히 지겹고도 괴롭다(뭐, ‘유황불의 지옥’에 비하면 천국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서서 자는 법을 터득하지 못할 경우엔 한두 시간동안 대개의 남자들은 펜과 종이도 없이 상상만으로도 소설을 쓴다(대개 소설의 소재는 ‘휴가’가 되고, 반드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나는 상상의 소설을 쓰다 지치면, 상상으로 음악을 듣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업무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그 잠시 동안의 지루함을 못 참고 머릿속으로 시디플레이어를 가동시켰다.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어거스틴 바리오스 망고레의 <대성당>이 머릿속 스피커에 장엄하게 울린다. 어느 순간 나의 대뇌는 오로지 상상의 음악에 집중한다. 걷는 행위의 스위치는 ‘오토’로 놓여있다. 시선을 앞쪽을 향하여 있으나, ‘보는 게 보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바라 본 게 아니라 그저 대상들이 눈에 박히는 꼴이랄까. (상상의)청각이 모든 감각을 지배하기 시작하고....이윽고 순수몰입(flow)에 들어선다. 이제 무궁동의 빠른 아르페지오는 모든 것을 뒤덮는 베일이 되어 대뇌를 채운다. 주선율이 없어도 음형만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 감동. 이때 누군가 판을 깬다. 안개처럼 청각피질에 내려앉은 아르페지오의 베일을 확 걷어내 버린다. 야, 이 새끼야! 너 어딜 나가!


 음악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육두문자들이 바늘이 되어 청각피질을 마구 찔러댄다. XX놈아, 너 지금 대놓고 탈영 하는 거냐? 그 소리에 수동적으로 망막에 맺히던 것들을 이제 주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니 위병소 보초를 서고 있던 일병의 어이없다는 표정과 뭔가 구시렁대고 있는 위병조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서있는 위치가 부대 정문에서 약 5m정도 벗어난 지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상으로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부대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했던 거다. Flow의 힘이다.

 

 가라, 상념이여. 은빛 날개를 타고. 

 

 

 

 나의 문제는 은빛날개에 상념이 아닌, 종종 나 자신을 태우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청주행 시외버스는 그대로 은빛날개가 되어 나를 외딴 지역에 던져 놓았다. 버스 터미널의 대합실에서 원래의 목적지인 W시로 가기 위한 버스의 요금을 확인한 다음 주머니를 뒤졌다. 요금에서 딱 500원이 부족했다. 이럴 수가. 나는 이 우연의 일치에 경악했다. 두 시간 전,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 나는 가판대에서 ‘솔’담배를 한 갑 샀었고. 그 가격이 딱 500원이었다. 만약 담배를 사지 않았다면 차비는 충분, 아니 딱 맞았을 터였다.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500원을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구걸을 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구라를 치는 거다. 제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요, 500원만.... 아, 이건 좀 뭔가 비루해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구걸이 아닌 정정당당하게 교환을 하기로 결심한다. 수중에 있는 담배를 팔기로 한 거다. 다만 누구에게? 젊은 여자들이 비교적 인심이 후하겠지만, 초면의 남자에게 경계심을 느낄 터이다. 게다가 흡연의 가능성이 남자보다는 적다. 나는 몇몇 젊은 남자에게 접근하여 매각을 시도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이랬다. ‘저 담배 안 피워요.’ 혹은 ‘지금 담배 있습니다.’ 하기는, 암표도 아니고 누가 담배를 그런 식으로 사려고 하겠나. 자존심을 더 깎아서 좀 처연해 보이기로 한다. 저...제가 지금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요....

 

 적절한 구매 대상을 찾았다. 커플이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자신의 연인 앞에서 야박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껌을 파는 노인 분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주로 카페를 공략하는 건 이 때문일 거다. 나는 순해 보이는 한 쌍의 커플들에게 접근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나서 담배를 내밀자 남자가 선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담배 안 피워요.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거 그냥 드릴게요. 그는 내게 500원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마음속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복 받으시기를. 그리고 옆의 여자 분, 꼭 이 남자분과 결혼하기시를.

 

 500원을 손에 쥐고 매표소로 향했다. 조그만 반원의 구멍이 뚫려있는 유리 투입구에 남은 돈을 밀어 넣고 당당히 차표를 요구하자마자 돈은 다시 밖으로 밀려 나왔고, 직원이 말했다. 막차가 방금 전에 떠났습니다.
 아, X됐다...

 

 

 

  기차를 이용하는 수가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차역까지 가는 차비를 더 낭비해야 했을 뿐더러, 그럴 경우 기차를 탈 비용이 모자라게 될 터였다. 무임승차를 할 배짱도 없다. 어차피 오늘밤 안으로 여기를 벗어나는 건 틀렸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공원 벤치에서 한뎃잠을 자기엔 초봄이라 약간 추운 날씨다.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터미널의 대합실이 그나마 새벽이슬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대합실의 불이 꺼졌고, 나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벤치에 드러누워 한참을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50대의 경비원이었다. 어이, 여기서 자면 안 돼. 여기가 여관이야? 그날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으로 보아 아마도 이것과 대동소이한 투로 얘기했을 거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일부 아저씨들은 종종 나이와 계급을 혼동한다. 계급이 깡패지 나이는 깡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꽤나 자주 망각, 아니 무시한다.

 

 노숙의 밤이 깊어만 갔다.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었고, 10분마다 한 대씩 담배를 태웠다. 눈앞에 자그마한 공원이 들어왔고, 벤치 위에서 마냥 앉아있었다. 그때에는 상상으로 음악을 듣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다(역시 예술이란 등 따시고 배부를 때의 얘기다). 한기를 느껴 공원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걷다보니 눈앞에 조그만 경찰서가 눈에 들어왔다. 아, 민중의 지팡이라면 흔쾌히 민중의 침대, 아니 민중의 온돌방이라도 되어 주리라. 나는 마음을 다잡은 후에 지구대의 문을 두드렸다. 어차피 담배 판매로 이미 충분히 자존심은 구긴 상태다, 까짓 거 한 번 더...

 

 어떤 일이십니까? 철제 책상에 앉아있던 경찰이 말했다. 나는 당당하게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했는데, 아마도 수치감에의 반작용 때문에 그랬을 거다. 저기, 차가 끊겨서 그러는데요, 좀 자고 가면 안 될까 싶어서요. 안에 있던 세 명의 경찰들이 자지러졌고, 마분지처럼 빳빳했던 일말의 자존심은 코 푼 휴지처럼 마구 구겨졌다.

 

 영화 <친구>에서 상택이가 유치장 면회실에서 준석에게 묻는다. 준석아, 니 와 그랬노? 준석은 이렇게 대답한다. 쪽팔리서. 건달이 쪽팔리믄 안될 거 아이가. 만약 준석이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쪽팔리믄 안 되는’ 준석은 아마도 고딩들 상대로 삥을 뜯어서라도 여관비를 마련하려 했을 거다. 그가 조직 건달이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건달만 ‘쪽팔리믄 안 되는’ 게 아니라 대개 남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택의 추는 쪽팔림보다 위법을 감수하는 쪽으로 기운다. 만약 위법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윤리의식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위법 행위 시 적발되었을 때의 쪽팔림은 합법적 행위 시의 쪽팔림보다 더욱 쪽팔린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삥을 뜯지 않았던 건 전자의 이유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내 외관과 능력은 삥 뜯으러 갔다가 직사하게 쥐어 터져서 오기에 적합했다는 거다.



 저기라도 괜찮겠습니까? 웃음을 그친 경찰들 중 하나가 사고 친 인간의 보호자가 대기하면 딱 어울릴 법한 검은색 인조가죽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는 아니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한 뒤에 소파 위에 앉았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뒤에 나는 소파 위에 누웠고, 경찰 중 한 명이 내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그 담요 덕에 이내 잠들었다. 복 받으시길.

 

 잠이 깬 건 아마도 새벽 서너 시 즈음이었을 거다. 크나큰 목소리에 눈을 떴고, 고개를 돌리니 철제 책상 앞의 철제 의자에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청소년 한 명이 앉아 있었고, 책상 너머로 조금 전의 경찰이 무언가를 다그치고 있었다. 이 새끼야, 그러니까 네 친구들 이름을 대란 말이야. X만한 새끼들이 조직은 무슨. 나는 돌린 고개를 다시 똑 바로 뉘어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안 그러면 달리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안 불어? 이 새끼 봐라? 뭐야. 너희 같은 새끼들도 의리 지키고 다니냐? 그 경찰의 겁박에도 그 학생은 꿈쩍도 안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일 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경찰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잡혀 들어온 그 학생은 아마도 가출한 불량학생이었지 싶었다. 공원에서 본드나 부탄가스 따위를 불다가 누군가 신고하여 경찰에 걸려들었는데, 교내 불량 조직 소속인 공범 친구들은 죄다 달아나 버리고 재수 없게도 그만 잡히고 말았던 거다. 아마 다른 친구들보다 좀 많이 불어서 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나 보다. 과유불급이라 했거늘.

 

그는 불지 않았다. 본드 말고 친구의 이름을 말이다. 쪽팔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이 묵비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폭력이 행사되기 시작했다. ‘짝.’ 그 학생은 내게 등 돌리고 있었으므로 내가 눈을 떴어도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을 테지만, 그의 한 쪽 뺨이 붉게 물든 것은 상상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또다시 ‘짝.’ 나머지 뺨이 채색 불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마저 붉어졌(을 것이)다. 귀로 느끼는 색채감. 이런 걸 일러 공감각이라고 하는 건가.

 

 ‘짝’은 어느덧 ‘퍽’으로 바뀌고, 잠은 채찍 맞은 말처럼 완전히 달아났다. 더불어 담요를 건네받았을 때의 감사한 마음도 말에 딸린 마차처럼 같이 사라져버렸다. 어느덧 폭력의 효용은 묵비권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입증이 되고, 이제 쪽팔리게 된 그 학생의 공범 친구들도 프랑크 소시지처럼 줄줄이 딸려 들어오게 되리라. 그러니까 진즉에 불었으면 좋았잖아?

 

 

 

 

 어쨌거나 ‘대략난감’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쓰라고 있는 것 같다. 폭력이 동반된 취조 현장에서 나는 그대로 자빠져 잠이 든 척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최소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어야 하는 건가? 물론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 당시에 내 선택지라고는 죽은 척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누워있으려니, 유출된 기름으로 범벅이 된 파도처럼 위화감이 끈적거리며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쥐어 터지고 있는 상황이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두 발 뻗고 누워있다는 것.

 

 유사한 상황을 상상해 보자. 창밖 거리에서는 용역업체 관련자들이 도시 미관을 훼손한 행상인들에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의 범법 행위를 응징하고 있는 중이다. 리어카는 박살나고, 순대와 떡볶이는 내장의 피처럼 바닥에 짓이겨진다. 나는 그 광경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안락한 의자에 앉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이 일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주문해 놓은 거다. 이 상황에서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일 말고도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향은 달아나고 만다(나의 경우 달아난 것은 커피 향이 아니라 수면욕이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

 

 


 항문에 커다란 꼬챙이를 깊게 꽂은 다음 길가 양쪽에 일렬종대로 게시해놓은 이슬람교도 인질들의 시신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겼다는 인간이 있단다.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지금의 루마니아)의 영주 블라드 3세 바사라브(Vlad III Basarab). 이런 인간들은 그런 상황에서 밥이 별미(別味)로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나보다.

 ‘(사디즘적)시각의 미각화’라는 기묘한 공감각.

 

 

 이제 솔직한 내면에 접근해보자.
 그날 내가 느낀 것은 오직 끈적거리는 위화감뿐이었나? 대조적인 상황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취침하는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뿐이었나? 잠들지 못하고 잠든 척을 했던 것이 오로지 그 학생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 어색하기만 했던 경찰서의 검은색 소파 위에서 그 상황에 대해 즐긴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은근히 흥미가 동하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랬다. 당시의 나는 연민과 송구스러움의 플러스 감정과 관음증적 호기심의 마이너스 감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짝’ 혹은 ‘퍽’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양가감정. 생소한 건 아니다. 도끼에 마빡을 찍히는 호러무비 등장인물들에게 느끼는 감정의 시소(seesaw) 같은 것. 연민과 호기심. 시소의 한쪽에는 관음보살, 다른 쪽에는 관음증 변태.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웃는 존재. 이렇게 정의한
토마스 홉스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것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단다(그리고 이 심리는 생존경쟁에 기인한 인류의 본성이란다). 몇 년 전,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 폭탄이 떨어지는 광경을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구경을 한 일부 이스라엘 청년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얘기를 인터넷 기사를 통해 들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남 얘기이던가? TV로 걸프전이나 쌍둥이빌딩의 붕괴 장면을 집중하여 본 건 누구였더라? 의과에 적을 두었던 한 후배의 법의학 교재 화보를 왜 유심히 본 것일까? 선로 위에 3등분된 참혹한 시신을.

 내면의 악마 하이드 씨.

 

 훌륭한 책에서는 전쟁을 악으로 여기죠...하지만 그래 놓고는 피투성이 전쟁 이야기를 많이도 나불대죠.

                            -코맥 매카시, <핏빛 자오선>중에서

 

 

 

 아주 어린 시절, 강둑길 너머 한강 쪽에 면한 언덕에서는 자주 동물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잡아먹은 개의 뼈였다. 그리고 그 반대쪽, 그러니까 주택가에 면한 둑길 바로 아래 있었던 빈 터에는 개털로 유추되는 짐승의 털이 가득 찬 자루가 쌓여 있었고, 한 겨울에 연날리기를 할 때면 그곳을 일종의 소파로 애용하곤 했다.


 당시에 유해나 털은 그저 호기심과 실용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것 같다. 폭력의 잔해들에서 도살되는 것들의 공포와 고통을 읽는 상상력이 없었으며, 그것들은 그저 타 존재의 추상적인 죽음이 남긴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래서였을까? 불구경은 일회성 쇼가 되었고, 언젠가 버스 아래에서 불에 타 죽은 어떤 오토바이 운전사의 종아리를 보았을 때는 그 살의 질감이 마치 마네킹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정강이 부근에서 발목까지 흘러내리는 한줄기 빨간 액체가 현실을 온전히 잊지 않게는 해주었겠지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Doors)>의 초반에는 어린 시절의 짐 리슨(Jim Morrison)이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인디언 가족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짐에게 그것은 일종의 내상이 되었고, 이후 죽음의 문제에 집착하게 되는 발화점으로 작용한다. 이에 비하면 내 유년의 그것은 다소 추상적이고 따라서 흐리멍덩한 그 무엇일 뿐이었겠지만, 장기기억에 화인(火印)처럼 찍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만은 아니었지 싶다. 사후적이지만, 대체로 인간은 그런 낙인을 기점으로 하여 훗날 타자의 고통에 공명하게 되기도 하나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게. 성장하면서 타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다는 희망.

 

 물론 태곳적 본성에 머물고 마는 경우도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이들의 공통된 심리는 다음과 같다. 넌 아프냐? 내 눈은 즐거운데.

 

 

 

 

 새벽 다섯 시, 취조는 끝났다. ‘쇼’가 끝난 것이다. 잘 잤습니까? 지킬박사로 돌아온 경찰이 내게 물었다. 일단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잠시 질문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물음은 내겐 ‘그 상황에서 잠이 잘도 오던가요?’나, ‘잘 봤습니까?’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서야 내면의 하이드 씨와 뻘쭘한 상황을 떨치기 위해서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한 뒤에 희붐한 바깥으로 나와 새벽안개를 뚫고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뜨니 목적지였다. 새삼 지난밤이 길게 느껴졌다.

 

 그 다음 이른 아침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확실한 기억은 철학시험을 치르지 못해서 그날 나 홀로 재시험을 치렀다는 것. 시험에 불참한 나는 해당과목의 교수님에게 불참 사유를 얘기했고, 그는 자신의 교수연구실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철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베껴 썼다. ‘오픈 북’ 시험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교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 스스로의 결정으로 ‘오픈 북’을 한 건지는 기억에 없다. 후자의 경우라면 아마도 교수의 관용에 나름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페서 지킬’은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여 먼지 나듯 패지는 않을 테니까. 



 

 

 그해 봄, 교내에서는 경찰서 안에서의 구타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별나게 끔찍한 상황의 사진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게시되었다. 체내에 우산대와 콜라병이 박힌 채 살해당한 어느 윤락녀의 사진, 강물에 온몸이 불은 채 부패되고 탈장된 이의 (당국에서는 실족사로 발표한)사진, 광주 민주화 운동(가스통 좋아하는 혹자에게는 북괴 책동에 의한 국가전복난동)시 대검과 소총에 머리가 짓이겨진 이의 사진들. 참혹하지만, 현실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실사(實寫)들. 현장의 질감을 실감나게 상상하여 지각하지 못하는 불감증을 증명해주는.

 (이미지 소비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실사는 힘이 약하다...)

 

 그리고 그것들 중 하나는 내가 적을 둔 동아리방 출입문에서 겨우 1m 떨어진 벽면에 붙어있었다. 당시에는 기타 연습을 빙자하여 동방에서 기숙하는 날들이 많았는데, 한밤중의 요의는 인간의 양가감정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방에서 3m 정도 떨어져 있던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얼마나 배꼬인 양가감정의 밧줄―공포와 연민(눈을 감고 싶은 욕망), 그리고 호기심(눈을 뜨고 싶은 욕망)의―사이에서 목이 졸리었던가.

 

 하필 동아리 출입문 옆에 그 사진을 붙여놓은 저의는 뭘까? 어쩌면 이렇게 암묵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깡패가 되는 작금의 상황에  기타가 뚱땅뚱땅 잘도 쳐지냐고.
 그런 속내가 무색하게 그날 밤에도 무관심의 베일 같은 음악이 출입문을 넘어 복도로 흘렀고, 청각은 시각적 잔영을 머지않아 지워버렸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Tesis>중에서

 

 

 매일, 매달, 혹은 신문지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가장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 실리지 않을 때가 없다.(.....)처음 줄부터 끝줄까지, 모든 신문들은 공포에 질릴 만한 소식투성이이다.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매스꺼운 전채(前菜)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샤를 보들레르의 일기 중에서

 

 

 

 사족이지만, 일말의 자기 구제를 위한 변명의 여지는 남겨둔다. 사진들은 불감증의 갑각(甲殼)에 아로새겨진 화인(火印)으로 남겨질 가능성은 있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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