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는 죽음에 합당한 예가 있어야 한다
맞아 죽었건 빠져 죽었건 가장 행복하게
지난 시간을 한번 더 꿈꾸다 죽었건
죽음에게는 죽음에 합당한
산 자의 예의가 보태져야 한다
그게 애통이든 극락왕생에 대한 기원이든
차라리 잘 가셨네, 하는 체념이든
죽음에 대한 예의가 곧 산 자의 삶이다
그런데 이제 죽음도 장사가 되고 정치가 되고
타락한 언어의 진지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삶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사람들을 아예 밀어 죽이고도,
태워 죽이고 패 죽이고도, 법이나 말하고
사회의 질서나 떠벌이고 국가의 안녕을 핑계 대는
잔인한 웃음들이 자라고 있다
법률의 이름으로
경제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죽음에 합당치 못한 무례가 넘쳐나고 있다
죽음에게는 먼저 진창인 마음을 여미는
산 자의 염치와 겸손이 있어야 하는데
죽인 자의 자책과 통곡이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께 혼나는 탕자의 눈물바람이 있어야 하는데
ㅡ황규관, <죽음에게는 먼저>
-2009년 용산 학살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