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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크리스마스 양초

 

 

 

 

초딩이 시절, 크리스마스 양초를 친구와 이렇게 만들었다.

 

1. 과학실에서 알코올 램프를 빌린다.
2. 하얀 초와 크레파스를 산다.
3. 알코올 램프로 이것들을 녹이고 섞는다.
4. 녹인 것을 거푸집에 부어넣는다.
5. 심지를 꽂아넣는다.
6.다 굳으면 거푸집에서 빼낸다.

 

정확한 순서는 아니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꽤나 많이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약 18년의 세월이 지나 동창회에서 동업자 친구를 다시 만났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그가 말했다.
"우리집이 예전에 좀 가난했잖냐.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돈을 벌려고 애썼던 것 같아. 6학년 때는 컬러 양초를 만들어서 반 애들에게 많이 팔았더랬지."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쪼잔한 생각.
'많이 팔았다고? 그랬단 말야? 난 한 푼도 못 받았는데!'
횡령으로 고소하자니 공소시효가 끝났다.ㅋㅋㅋ
아니, 어쩌면 당시 나의 임금은 양초 두어 개였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열공한 그는 서울 S대를 나와 벤처기업 사장님이 되었고,
중산층은 되었던지라 가난을 극복할 생각이 거의 없었던 나는 '니나노~' 풍악을 울리다가 '지잡' S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수입 없는 노동에 익숙해졌다.

역시 인간 팔자는 결정되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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