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맘대로 리뷰

45년 후


"그리고 눈앞으로 날아든 한 장의 부음,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내 잃어버린 사랑.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고 그 사랑은 파도치듯 밀려오는 망각의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의 <해설>부분에 쓰여있는 이 문장으로 영화 <45년 후(원제 45years)>를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결혼한지 45년이 다 되어갈 무렵, 케이트의 남편인 제프에게 옛 연인의 부음이 날아든다. 그 이후 케이트는 남편이 예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는 걸 목격하고, 다락방 깊숙이에서 남편의 옛 연인이 찍힌 슬라이드 필름을 발견한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날인가, 친구 영철이(가명)의 사진 앨범을 통해 그와 그의 옛 연인이 긴 여행중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난 후 다음의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가갈 때 이 사진들 다 불태워 버릴거지?"
"미쳤냐?"
"그러다가 네 (미래의) 와이프가 이걸 발견하면 어쩌려고?"
"할 수 없지.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
"만약 네 (미래의) 와이프가 이것들을 싸그리 태워버린다면?"
"그때는 이혼해야지."

'이혼한다'는 얘기는 아마도 대화의 재미를 위한 과장이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그때 어렴풋이 그의 앞날을 예감했을는지도 모른다. 독신 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든가, 혹은 결혼을 하게 되어도 그 결말이 그리 밝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는...
하지만 어쩔 것인가. 제프와 영철이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을지언정 악의는 없는 통제 불가의 이 맹목적인 그리움을. 내 품에 없는 것에 대해 더 가열하게 되는 욕망인 것을.


'꿩 대신 닭'이 되어버린 케이트와, 역시나 '꿩 대신 닭'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한 영철이의 (지금으로서는 누군지 모를 미래의) 와이프에게 있어서 어쩌면 결혼이란, 어느 소설(혹은 영화)의 제목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씨네21>의 한 평론가는 한 줄 평으로 이렇게 요약했다. "결혼이라는 길고 고요한 서스펜스에 대해서."
★★★★☆

간만에 <Smoke gets in your eyes>가 듣고 싶어진다.





'내 맘대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란 무엇인가?  (0) 2016.07.19
싱 스트리트  (0) 2016.07.19
사랑의 스잔나  (0) 2016.05.28
꽃이 진 후  (0) 2016.05.28
매직 스트링  (0) 201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