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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거리에서

                                                            

 
 1999년 12월 31일의 거리는,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상기된 표정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자동차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 지하철 출구 건물의 지붕 위에서 뭔가를 향해 소리지르던 사람들, 차도로 쏟아져 나와 인도를 무색하게 만든 무수한 사람들...그리고 저 멀리에서 들리던, 연예인들의 노래와 춤. 거리는 축제 그 자체였고 달뜬 사람들의 얼굴은 축제 분위기와 달빛으로 훤했을 것이다. 친구의 강제 아닌 강제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 나는 어지러운 인파 속에서 길을 잃고 정신을 빼앗겼다. 신음 대신 가벼운 욕설이 욕지기를 대신하여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람들로부터 쏟아져 나온 온갖 음성들, 어지러운 음파들의 중복, 청각을 교란시키는 장소에 대한 혐오.


 


 

 

한때 소주방이라는 곳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적은 양의 안주거리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비교적 젊은 분위기의 주점이었는데 두세 번 친구들의 권유로 인해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는 술자리로 소주방 따위는 적합한 곳이 되지 못한다. 음악...요란한 음악들이 문제인 것이다. 손님들이 많을수록 음악의 볼륨은 높아져 간다. 이유가 뭘까? 20년 전에, 디제이 박스가 있었던 한 카페에서 디제이로 일하던 한 친구 놈의 말에 의하면, 손님이 많아서 자리가 없을 때에는 대화가 큰 소리로서만 소통 가능할 지경에 이를 정도까지 부러 볼륨을 높인다고 한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목소리도 커지게 되고...그쯤 되면 소란함을 이기지 못하는 손님들은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음악이 가끔 본래 취지를 거슬러 이런 식으로 소비되기도 하는 모양이고, 또 그것이 상업적 이유로 적당히 쓸만한 방식인지는 몰라도 상도(商道)로써는 10점짜리가 아닌가. 그 10점짜리 상도덕 수준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소주방이 그랬다. 의사소통을 포기함으로서 오는 권태감을 과음과 폭식으로 달랬다. 아, 또 한 가지. 주변의 여자들 둘러보기.

하지만 어쩔 것이랴. 내 것일 수 없는 열망들을.

 

올림픽 공원을 좋아했다.

한적하고 긴 산책길을 좋아했고 피크닉장의 석탁과 풍향계를 좋아했다. 가끔 찾아와서 모이를 요구하는 비둘기 무리들이 좋았고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누워서 잠들 수 있는 기다란 벤치가 좋았다.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이 좋았고, 눈을 감은 얼굴로 가볍게 날아드는 무색무취의 서늘한 바람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육성이 배제된, 고요함이 좋았다. 평일 오후의 피크닉장 벤치에 누워 눈을 감으면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뭇잎 사이와 잔디 위를 유영하는 바람소리와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울하지만 감내하다보면 은근한 쾌감이 되기도 하는 고독감, 지난 기억들의 미로를 헤매다가 문득 빠져드는 졸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한적함. 그리고 평화.

만일 신이 크눌프에게 그랬듯이 그 때 내게 나타나서 만족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처럼 북적이지 않는 한, 아마도 난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눈밭이 아닌 벤치에 누워.

 


 

               조르주 피에르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러나 평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자초한 고립감은 쾌감일 수도 있었던 고독감을 쓴 맛 나는 백태처럼 변질시킬 때가 잦아졌고, 그때마다 나는 침을 뱉으며 거리로 향했다. 침 뱉기로도 사라지지 않는 쓴 맛의 혓바닥을 알코올로 닦아냈고 잠시 동안은 쓴 맛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 이런 방법이 있었지...이렇게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나는 오랫동안 그 생활에 길들여졌다.

그러다가 고막을 찢는 나이트클럽의 과도한 음향들과 거리의 소음들, 그리고 결코 잡을 수 없었던 열망들에 시들어 갈 즈음, 온갖 내음이 뒤섞인 거리의 한 구석에서 그만 돌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욕망들'에 불을 지피지 않도록, 등질화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도록,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도록 이 유형지에서 떠나가라는 소리를.

그 평일의 고요했던 피크닉장은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라거나, "너는 무엇을 이루어야 하니?"라는 물음조차 비켜나가는-'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고집'조차 고개를 들지 못했던 장소였다. 한갓 삿된 욕망을 무력화할 수 있었던.

나는 오랫동안 그 장소를 잊고 살았다. 그래서 마음속에서는 매일 전쟁의 연속이었다.

찬바람이 속살을 파고드는 새벽녘의 거리에서 문득 그 곳을 추억한다.

 

 

                      




 그리고 홀로 떨어져있는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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