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묘석에는 서 있는 자기의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는 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세기의 무덤 벽돌에서는 죽은 사람의 발치에 누워있는 그레이하운드가 보인다. 우리네의 무덤에서는 가장 친근한 동물도 추방되고, 초상화마저 그려 넣을 수가 없다. 인간은 자기자신과 더불어 홀로 있다. 그는 당연히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만을 가질 뿐이다.
개는 따로 매장된다. 아스니에르에서 가까운 이 섬의 공동묘지에서처럼.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중에서.
가을이 절정에 이르던 작년 10월의 일이다. 한 동물병원에 차에 치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구 한마리가 위중한 상태로 입원되었다. 최초 신고자는 앳되 보이는 얼굴의, 20살 정도 되어보이는 두 명의 여대생들이었다. 이들은 그 백구의 견주가 아니었다. 우연히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대로변을 지나가다가, 인도 한 구석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백구를 발견했던 것. 그들은 시의 담당 부서에 전화를 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포획 담당자가 자신의 차로 그 개를 실어 온 것이다.
수의사 선생님의 진단 결과는 대퇴부 골절(4군데)에 심장사상충 3기. 결론은 '수술 불가.' 혼수상태에 이미 복수에 물이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위중해서 수술이 사망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제 선택은 둘 중 하나. 이 녀석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기를 기다리거나 고통을 덜어줄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 의사 선생님은 전자를 선택하셨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백구는 반나절 가량 수액을 맞은 보람도 없이 그날 저녁 늦게 숨을 거둠으로 축생으로서의 무거운 삶을 벗어났다.
하루가 지나도록 견주로부터의 실종신고가 시의 담당부서에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건대, 아마도 이 백구는 유기견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도 먹을거리를 찾아 떠돌다가 대로를 건넜을 것이고, 아마도 과속 차량에 치이게 되었을 것이다.
여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이 녀석에게 독자리와 이불을 깔아주었다...
여대생들 중 한 명인 A양으로부터 동물보호명예감시관으로 일하는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백구의 소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잠시 울먹인 후 백구의 사후 처리 문제에 관해 물었다. 유기견의 사체는 시에서 지정,계약한 장례업체(라기 보다는 소각업체)에서 거두어가고 같은 운명으로 세상을 떠난 개들의 사체들을 모아 한 곳에서 동시에 소각한다고 알려주자, 그녀는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극구 반대했다. 자신이 장례 비용을 댈 테니, 그런 소각업체로 보내지 말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병원 입구에 쪼그려 앉은 그녀들을 만났다. 같이 병원에 들어갔고, 잠시 후 이불에 감사인 채로 싸늘하게 식은 백구를 안은 그녀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나왔다. 그녀들은 차에 타서도 백구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울먹였다. "진작에 발견했더라면..."라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심 때 즈음에 김포시에 있는 애견 장례식장인-지나친 의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소각장이라고 불리울 수밖에 없겠지만-'엔젤스톤'에 도착했다. A양이 백구를 안은 채로 현관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서자 직원이 곧바로 백구를 받아들더니 스트레쳐 카(Stretcher Car : 환자 이송용 바퀴 달린 들것)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로비의 오른쪽 벽면에는 방문이 세 개 정도 있었고, 그 중 가운데 방으로 이동식 침대는 옮겨졌다. 추모실 안에는 죽은 반려동물의 사진(지나친 의인화가 마음에 걸려 '영정사진'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을 넣을 수 있는 액자가 단상 한가운데에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 조화와 함께 애견용 간식이 담겨있는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그 단상 너머는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창 너머로 소각로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마도 마지막 가는 길을 볼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백구가 놓여있던 스트레쳐 카는 단상 바로 앞에 놓여졌다. A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액자에 비스듬히 세워놓았다. 처음 발견 시 핸폰으로 찍어둔 백구의 사진이었는데, A4용지 크기로 확대한 후 코팅까지 해놓았다.
이 사진이었다.
여학생들은 백구의 머리를 오랫동안 쓰다듬으며 백구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얼마나 아팠을까...." A양이 말했다.
도쿄대 의대 교수였던 요로 다케시(1937~)는 '시신'의 종류를 '1인칭 시신'과 '2인칭 시신', 그리고 '3인칭 시신'으로 나눈다. '1인칭 시신'이란 곧 '나의 시신'으로, 주체인 '내'가 죽음으로 인해 사실상 '나의 시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2인칭 시신'은 부모나 부인(남편), 또는 친구나 애인처럼 친근한 존재의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경우엔 슬픔이란 감정을 동반하는 죽음인 것이다.
'3인칭 시신'이란 완전한 '타자'의 죽음을 말한다. 건물이 붕괴되어 죽든 해일로 인해 죽든, 내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타자'의 죽음일 뿐이므로 애도의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 것이다.
동네의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백구는 차에 치인 뒤 길가에서 오랫동안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그동안 무수한 차와 행인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사람들의 눈에 단지 '보였을 뿐', '주시'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부상당한 흔적을 비틀거리는 백구의 몸동작에서 추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구는 결코 눈에 '밟히지 않았다.'
백구는 살아생전에 유기견으로서 이미 3인칭의 존재였을 것이다. 동네에서는 주인 모를 '잡견'에 불과했을 것이고 그 누구도 이름을 부여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차에 치여 부상을 당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구는'사람'이 아닌 '개'-그것도 '버려진 개'일 뿐인 것이다.
살아생전에 3인칭의 존재 밖에는 될 수 없었던 백구는, 죽어서 '2인칭 시신'이 되었다. 이제 백구는 '아무도' 돌보지 않고 '아무도' 웃어주지 않던 '존재감 없는' 존재에서, '누군가' 거두어주고 '누군가' 울어주는 '존재감 있는 비존재(이미 죽었으므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거리를 떠돌던 무명견은 죽어서 비로소 그녀들로부터 이름(아마 '흰돌이'였을 것이다)을 부여받았다.
기묘한 아이러니.
나는 착찹한 마음에 로비로 나왔다. 로비의 정 중앙에는 '천지교목'이라 이름 붙인 거대한 나무가 있었고 나뭇가지에는 무수한 죽음이 달려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떠나보낸 반려동물들의 이름과 추모글이 담긴,조그만 플라스틱 조각들이 위패처럼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수한 그것들 사이에서 익숙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수 년 전에 떠나보낸 나의 멍멍이 '토루'의 이름이 적혀있는 위패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죽음들 사이에 파묻혀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살아 있을 때, 나는 항상 너보다는 아는 게 많다고 생각했지. 물론 그건 당연한 생각이었어. 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젠 사람인 나도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내세라는 것이 있다면...지금쯤 너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아직 살아있으므로 결코 알 수 없단다....'
죽음이 열매처럼 열렸다.
나의 개는 골육종이라는 암으로 6년의 짧은 생을 살다가 갔다. 암덩어리들 때문에 한 쪽 발이 퉁퉁 부운 채로 절뚝이며 걸어다녔는데, 하루는 병원에 가려고 차에 올라타기 직전에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병원 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문을 열고 집 마당으로 들여보내야 했지만 들기에는 개가 너무도 컸다(말라뮤트 종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만 들어와야 했었고, 토루는 그렇게 마지막 힘을 냈다. 그리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 누워버렸고....한동안 가쁜 숨을 내쉬다가 얼마후 움직임이 멎었고 그와 동시에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다'는 말은 메타포가 아니다. 나는 보았다. 정말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그리고 '실제의 죽음'은 '공상속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그 때 알았다. 이전의 '앎'은 단지 영화가 만든 죽음을 소비하고 매스컴이 알려준 죽음을 주워들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쩌면 '겨우 개의 죽음가지고 호들갑 떠는 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동물'의 2분법적 고정관념에 젖을수록 그럴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전환해서 보면인간이든 개든, 모두 다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연을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당연시 하지만, 본질적인 입장에서 '인간=자연의 일부분'이므로, 그것은 인간 자신에 대한 자해가 되는 건 아닐까?
개의 죽음에서도 생자필멸의 진리를 응시할 수 있다. 반대로, 타자화에 익숙해질수록 인간의 죽음에서조차 무감각해진다.
군 시절에 조포(弔砲)를 쏜 적이 있다. 조포 쏘기를 연습하던 날, 나를 포함한 조포수들은 연습을 하며 때론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틀 전, 다른 내무실의 사병 한 명이 숨을 거두었다. 세워놓은 트럭에 깔린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숙연했던 그날 저녁, 나는 내무반장 역할을 맡았다. 일직사관에게 점호보고를 하기 위해서 대대 출석 현황을 체크하는데 이상하게도 인원수가 맞지 않는 것이다. 파견 나간 인원도 정확하게 체크했고, 야간 근무 나간 사병들의 수도 정확히 체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나는 그 이유를 간파-라고 표현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어리석게도-하였다. 죽은 이를 출석에서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그 날, 그의 죽음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의 전광판에 명시된 '숫자로서의 죽음'처럼.
오늘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 1
장례식 날, 나를 포함한 조포수들은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까지도 우리들은 그 '3인칭 시신'앞에서 여전히 웃고, 먹고, 떠들며 다녔다. 이윽고 긴장의 순간이 다가왔다. 조포수들은 같은 동작으로 총을 높이 들어 추모의 조포를 쏘았다. 잠시후 소란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유족들의 절규였다.
"이 자식들아! 내 아들 살려내!"
그리고 그의 누나인 듯한 한 여성이 제삿상을 뒤집어 엎어버린 후 주저앉아 오열하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비로소 눈시울이 붉어졌다. 3인칭이었던 죽음은 그렇게 유가족들에 의해 2인칭의 죽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날, 죽음은 하나의 숫자도 아니었고 추상적인 그 무엇도 아니었다. 역설이지만, 죽음이 그렇게 '있었다.'
아니, 이 말은 순 거짓말이다. 그날 있었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뿐이었다.
무수한 죽음이 달려있다.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해준 반려인(人)이 있어서 행복하지 않았겠는가.
애도의 시간이 지나고, 백구는 화장터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화덕에 들어간 다음 한참 후에 다른 모습으로 나왔고, 그것마저 분쇄되어 작은 옹기에 담겨진 하얀 가루로만 남았다. 백구는 이제 더이상 나보다 아는 게 없는 존재가 아니다. 토루와 마찬가지로 백구는 내세를 알게 된(그런 것이 있다면) 것이다. 내가 아는 죽음이란 고작....이렇게 하얀 뼛가루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잘가라, 백구야. 부디 다시는 축생으로 태어나지도 말고 단지 멸과(滅果 : 태어나고 죽는 인과(因科)를 없애고 열반에 드는 일)를 이루거라.
돌아오는 길에 기분을 전환할 겸 해서 오디오의 버튼을 눌렀다. Styx의 <Dear John>이 타미 쇼(Tommy Shaw)의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음악도 내게 사진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가사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날의 쓸쓸한 죽음과 여린 마음을 지닌 그 학생들의 아름다운 눈물이 떠오를 것 같다.
눈물은 인정의 발로이며 인간미의 상징이다. 성스러운 물방울이다. 성경에서 아름다운 데를 묻는다면, 하나는 이역(異域)옥수수밭에서 향수의 눈물을 흘리는 루스의 이야기요, 또 하나는 '누가복음' 7장, 한 탕녀가 예수의 발 위에 흘린 눈물을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씻고, 거기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다. 미술품으로 내가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다. 거기에는 마리아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 저 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은 또한 눈물을 머금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이 '눈물 내리는 마음'이 독재자들에게 있었더라면, 수억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눈물>중에서.
어째서 '자연'은 개체의 비참함에는 관심이 없고 '종'의 지속에만 관심이 있는 것일까?
'죽음'은 쉬운 것, 예쁜 것, 기분 좋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완전히 대립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때문에 사회는 '죽음'을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격리시키고,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고통을 동반하는 행위를 '악'으로 치부하고 주변에서 배제시켜왔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에 서서 고통을 느끼는 상상력까지도 상실한 인간을 낳고 있다.
-후쿠오카 켄세이, <숨겨진 풍경> 중에서.
한때 당신들의 가족이었던 견공들...보호소 안에 들어가면 이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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