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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지난 11월에 참으로 많은 전화가 동기, 후배들로부터 왔다. 오랫동안 학원에 몸담으면서 전화 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 전화가 오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 반사회적 대인장애(?)인 나 같은 인간도 요즘은 다른 이들의 소식이 그립다. 특히 젊은 시절을 같이 했던 동아리 동기들, 선후배들의 소식은 더욱 그렇다.

 

"형, 나 명석인데..."

"아!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

"전 잘 지내요. 형은 어떻게 지내세요?"

"난 그냥 똑 같아."

"별 일은 없죠?"

"별 일? 웬 별 일? 별 일 좀 있었으면 좋겠다."

 

'별 일'은 원래 '우환'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부러 '권태로운 일상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일'로 치부하여 답변하고는 한다. 아마도 전화를 한 대부분의 지인들도 나처럼 별 일 없이 사는 탓에 모처럼 소식을 전한 것이리라.

간혹 별 일 없는 소시민적 일상에 염증을 느낀다고 지인들은 말하곤 한다. 염증을 느끼다, 이 푸념의 말조차 얼마나 상투적인가. 생의 돌파구가 필요한 때다. 가장 손쉬운(그러나 그 대가가 만만찮은) 길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의지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장미 빛 미래(참 진부한 은유다)를 상상하는 것.

그러나 장미꽃은커녕 이름 모를 들꽃 하나 피울 가능성조차 어려운 게 우리들 현실. 그럴 때는 마음속에 지지 않고 자라있을 과거의 잡풀이라도 떠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과거로의 퇴행?

 

 

이제는 멀리 가버려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무성한 잡풀들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거기엔 흰머리가 없고 과도한 뱃살이 없는 젊은 날의 내가 있었고, 감성의 날이 아직 무디지 않았던 우리들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최신 팝 음악이 옛날 음악이 되어버리고, 안경알도 점점 두꺼워지고,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부스가 잘 눈에 띄지 않게 되고, 신문의 문화면보다 정치면을 보는 횟수가 잦아지자, 사람들은 어느덧 음악과 기타를 말하는 대신 부동산 시세와 퇴직연금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놀기 좋아하던 사람들도 꼬박꼬박 자식들을 사교육으로 얽매고, 자신들의 자동차 배기량에 자부심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샤콘느를 들으며 감동했던 감성의 자리를 무엇이 대체한 걸까?

 

 

젊은 시절의 감성을 나이 먹어서까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로 살 수 있다고 들라크루와가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들 대부분은 예술가가 아니다. 어쩌면 '와!'를 잃어버리고 '왜?'를 묻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각을 상실한 요리사라고나 할까.

 

오래 전 어느 날인가, 낮잠을 자는 중에 살짝 열어놓은 창문 안으로 바람이 부드럽게 들어 온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처럼 나는 그 날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바람에도 음정이 있는 것이다. 그 음악은 귀와 함께 피부에 닿았으므로 나는 그 음악을 '공감각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또 어느 날인가, 내 손가락은 기타 위를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옛날보다는 비교적 숙달된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그 소리들은 예전의 바람의 노래만도 못했다. 손의 부지런한 노동이 흘린 음들의 시체를 내 청각은 단지 주워 담았을뿐, 음들의 살아있음을 지각하지 못했다. 평균율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그것은 '노래'가 아닌, 무의미한 음들의 집합체일 뿐인 그저 '죽은 소리'였다. 아니, 죽은 건 소리가 아니라 호기심 가득했던, 내면의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음악은 방향을 잃고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는, 미각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소명이 아닌, 삶의 관성일 뿐이다.

1989년에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글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형도, 詩作메모(1988.11)

 

나도 이 땅의 날씨가 나빴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무감각과 무력감은 순전히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이유인 것이다.

들라크루와의 말처럼 살아가기 어렵다면, 다시 말해 젊은 날의 미각을 상실한 채로 과거의 삶을 이어가는 삶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서 그 때 그 시절로 가면 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야만 한다. 그곳에 이르러서야 나는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병약한 몸으로, 코르크를 바른 방에 틀어박혀 천착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일은 그에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내겐 프루스트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마들렌 한 조각 같은 것은 없다. 음악 한 조각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88년의 어느 가을날, 교정의 등나무 아래에서 서투르나마 연주했던 <Danza no.1>, 알바로 일했던 어느 양계장의 사료창고 안에서 연습하던 <Capricho Arabe>, 동아리방의 오디오가 고장 난 탓에 늘어지는 음색이 더욱 구슬펐던, 나르시소예페스가 연주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리고...눈 내리던 바다 근처 한적한 카페에서의 연주- 마티니로 인해 음주 연주가 되어버렸던, 스탠리 마이어즈의 <카바티나>.

 

그리고 음악들의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잡사(雜事)들. 그 잡사들 속에 때론 명쾌하게, 때론 얕은 비감(悲感)으로 다가오는 얼굴들. 비슷한 날들로 겹겹이 중첩된 세월 속에서 특별하게 빛나던, 음주 연주도 감상할 가치가 있다는 듯 무심히 듣던.

간혹 나는 음악을 되찾기 위해,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닌 무감각한 청각을 회복하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과거를 배회한다. 배회의 대가는 무력한 상실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련하고도 우울하지만 달콤한 쾌감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는 기억의 포만감이 존재한다. 그 포만감을 느낄 때면, 나의 연주는 (연주 수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비로소 음악을 되찾는다. 거기엔 손가락이 얼마나 빠르다든지, 곡의 난이도가 어떻다든지 하는, 외형적 나르시즘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기억의 환기는 과거로의 퇴행이 아닌,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촉매가 된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서투름에서 오는 미스 터치로 인한 잡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비가 내린다. 자연현상을 넘어선, 저마다의 사적인 기억이 담겨있는 비가 내린다. '비'가 환기하는 나만의 회상은 무한정 공유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이다.

 

단 하나의 우주가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의 수효만큼 다른 우주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비'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눈'이어도 되고 '바람'이어도 되고 '숲'이어도 된다. 사소할 수밖에 없어 삿된 기억일지라도 가끔은 그것으로 마음의 황사바람을 잠재운다. 물너울 위의 몽환적인 햇살이 그러하듯, 과거의 어떤 일들은 따뜻하고 눈부시게, 그리고 비밀스럽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음악의 순수성은 '무목적-적 아름다움'이라는 유일한 가치를 지닐까? 최초로 해당 음악을 감상하는 순간과 그 음악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지나, 어느 정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감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순수한 음악 자체에, 망각된 사적인 경험과 기억이 문득 덧대어지는 것을 깨닫곤 하니까.

감상하는 주체는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 반향 되는 것을 감지한다. 근래 새로이 접한 음악을 제외하면, 때로는 순수하게 그 음악 자체만을 향유하는 게 더 어렵다. 그 기억이 없어도 음악은 절대적 순수라는 성역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사적인 회상이 개입하게 되면 음악은 공통감각이 매개하는 공유물의 차원을 넘어, 개개인에게 지극히 사적이고도 유의미한 대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시(詩)라면, 독자의 자율성이라는 명분하에 저질러지는 무수한 오독을 근심하여야겠지만, 음악이라면 그런 걱정 따위는 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 카룰리 작곡의 Duo in G를 듣고 비애감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감각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기야 하겠지만, 대체 누가 해당 음악에 대한 오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음(音)은 언어가 아닌 탓에, 그 자체가 모호한 기표인 탓에, 우리에게 폭넓은 감상을 허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호함 속에 자신의 사적인 역사를 인각(印刻)한다. 그 순간 음악은 청각의 대상임과 동시에 심상(心像)의 대상이기도 하다. 일종의 공감각이랄까.

 

드뷔시는 음악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혹은 우리들 대부분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일종의 가상현실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아주 사적인-절대 공유가 불가능한-영역의 무의지적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의 한 쪽에는 한때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단정했지만 결국 세월에 마모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얼굴들이 있다. 한때 내 조잡한 음악들은 그들을 위해 연주되었지만 이젠 기억의 환기를 통해 어스름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그들 대신 회상 그 자체를 위해서 연주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엉성하나마...오로지 나만의 유일한 심상을 위해 연주되는, 사적인 음악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음악적 의미의 편린에 지나겠지만...적어도 미감을 잃어버렸을 때의 내게는 그 정수(精髓)로 기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박인환,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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