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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리뷰

대호



어제 <대호>를 봤다.
근래 본 한국 영화들 중 최고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극중 천만덕(최민식 분)은 직업이 포수다.
그리고 호랑이는 생태계 최고의 포식자다.
천만덕의 아들이 포수의 길을 가듯 아마도 천만덕도 환경의 영향을 받아 먹고 살기 위해 포수가 되었을 것이며,
호랑이가 최고 포식자가 된 것 역시 운명적인 것이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표면상 드러나는 것은 상호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생존을 위해 타존재를 죽여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동일한 운명이다(다만 극중 인간과 호랑이의 관계만으로 한정하면 호랑이는 좀 더 방어적인 위치에 있다). 스포일러 같아 정확히 말을 못하겠지만, 그 둘이 놓인 처지가 그것을 대변한다. 그들은 동일한 대상을 잃는다(그렇지만 각각의 상실 이유에 있어서 미세한 차이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


그럼에도 천만덕에게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
오직 돈이 된다는 이유로 새끼 호랑이마저 죽이려는, 포수 '구경(정만식 분)'을 포함한 동료들의 시도를 일갈하여 무력화시킨다("어차피 풀어줘 봤자 늑대에게 잡아 먹히거나 굶어 죽는다. 그럴 바엔 우리가 죽여서 가죽을 얻자"하며 '합리적 이성'의 판단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구경에게 천만덕은 "그건 자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일소에 부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천만덕은 자연 이상으로 나아간다).은퇴하여 약초로 생계를 연명한 후에는 아들의 포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른다. 무엇보다 죽이고 죽이는 관계가 불러온 비극을 경험했기 때문일 테다.


조선 최고의 '대호'를 잡기 위해, 정확히 말하자면 그 귀한 호랑이 가죽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군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휘하의 무수한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숲을 파괴한다. '의미'로 포장하여 은폐한 탐욕적 목적을 위해 개체를 희생시키는 전체주의의 상징 같은 존재다.


17세기 이후로 받아들여진, "기계론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세워진 자본주의적 인간 문명"은, 철학자 이정우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제 자연은 어차피 (일정한 법칙에 의해 결정론적으로 돌아가는)기계니까 자연은 위대하고 신성한 것이 아니라 조작 가능한 무엇, 인간이 편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는 무엇이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자연을 착취한다. 먹고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착취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천만덕의 운명이지만, 권력자들은 그 운명이 허용하는 한계선을 넘어 마에조노나 조선 포수 구경이 그러하였듯, 도리를 저버린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다국적 기업이 주도한 제국주의의 군대들처럼.


도리를 저버린 마에조노의 지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불행이다. 파헤쳐진 강바닥은 천만식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공리로 포장하고 경제논리로 은폐한 '마에조노'와 측근들의 탐욕을 보지 못한다면 작가 사라마구의 말처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일 수밖에 없다.


영화 포스터의 카피라이터 문구 : "총을 들어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마에조노나 구경을 칭송하여 지켜야 할 것을 방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을 때의 종극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말해준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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