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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도시 무지렁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걸린다.

참피나무와 서나무도 있다. 그리고 단 한 그루의 잘 자란 개느릅나무도 있다.

이건 뭐 '철수와 영희도 있다. 그리고 영철이도 있다'는 수준으로 막연하게 들린다. 영철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개느릅나무가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통 알지 못한다.

문득 이런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근데 이름을 알아야 불러줄 거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나무들은 그냥 '몸짓'이 되었다.

이런 대목과 마주쳤을 때는 황당하기만 했다.


 
나는 거의 80미터의 길이로 길게 뻗쳐 있는 푸른 콩두둑 사이를 천천히 왔다갔다하며 김을 맸다.

콩두둑? 두둑? 그게 뭐지?
김을 매? 김을 맨다는 게 대체 어떤 행위지? 분명 학교 다닐 때 배운 낱말들인데…설령 배우지 않았다손 쳐도 책들이나 TV에서 마주쳤을 낱말들이 아닌가? 실생활에서 쓰임이 없을 단어라고 무의식 중에 판단하여 의미를 묻지 않고 그냥 무시했던 건가? '김매기'를 모르다니, 아, 심하다….

생각해보니 이런 낱말들을 40년동안 입밖으로 한번이라도 낸 적이 있기나 했나 싶다. 입밖으로 낼 일이 없으니 입밖으로 낸 적도 없는 것이고, 따라서 발화되지 않는 낱말들은 망각되기 일쑤일 터. 게다가 '알코올 치매'까지 가세하면….

흙 떠난지 오래인…아니, 애시당초 흙에서 살아본 적도 없었던, 서울 한복판 출신 아스팔트 킨트(Asphalt-Kint)의 비극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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