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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세상의 이치

탑 클래스 넘버 원 기타리스트 안드레 니에리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겨우 5만 명.

아마추어 드러머임에도, 옷은 절반 정도 걸친 듯 만 듯한 어떤 예쁜이의 구독자 수는 120만 명.

체르니 30만 쳐도 충분히 연주할 것만 같은 곡들을 연주하면서도 남성들에게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새로운 감상법을 일깨워준, 짧고 패인 패션 감각의 어느 예쁜이의 구독자 수도 50만 명.

 

학원에 누군가 찾아온다. 마스크를 써서 예쁜이인지 안 예쁜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앳되어 보이는 처자다.

손에 여러가지 색상의 복주머니를 왕창 들고 있다. 방향제란다. 감이 온다.

이것들을 팔아서 이웃돕기도 하고 대학 등록금에도 보탠단다. 전자가 100% 뻥일지라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겠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가.

마침 방향제도 필요했겠다, 다소 비싸긴 해도 능히 만 원을 건낸다. 그녀가 가고 난 뒤 문득 오래 전에 비슷한 알바....아니 자선행사에 동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내 나이, 스무살. 학교에서 나름 미인으로 인정받던 한 선배가 겨울방학 중에 내게 전화를 했다. 불우이웃돕기 자선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나더러 같이 하자는 거다.

당시 무엇을 팔고 다녔는지는 기억에 없다. 서울 종로에 있는 여러 사무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취지를 설명하고 물건을 팔았던 기억은 있다.

무엇보다 뚜렷한 기억은, 그렇게 찾아갔던 사무실들 중에서 문전박대를 하거나 불쾌감을 표현한 사원들(대개 남자들이었다)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판매율도 아주 높았고.

 

그로부터 몇달 후, 원주에 가려는 버스를 잘못 타서 그만 청주에 도착하고 말았다. 원주로 돌아가려고 주머니를 뒤졌더니 차비가 모자란다. 고민 끝에 뜯지도 않았던 담배를 팔기로 한다. 지나가는 남자에게,

"저...지금 제가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이 담배 좀 사시겠어요?"

라고 말하면 거절 당할 확률이 훨씬 크겠지. 그렇다고 지나가는 여성에게 팔 수도 없는 노릇. 그리하여 커플들에게 접근하여 시도를 했고, 두세 번 만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담배를 안 피운다면 모르지만, 차비도 없는 불쌍한 청년에게 여친 앞에서 야박하게 구는 남자는 별로 없을 테니까.

 

당시의 구걸(?)행각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가 만약에 예쁜 꽃뱀....아니 여자라면, 시내 한가운데에 가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차비가 없음을 호소하며 만 원씩 뜯어내는 거다. 하루에 열 명만 성공해도 10만 원이고, 한 달이면 300만 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루에 못해도 20만 원은 가능하지 않을까? 와우!

 

......하지만 현실은 고구마남인지라 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며 푼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꼬우면 예쁘든지 잘 생겨라.

이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약관의 나이에 깨우쳤다.

 

아연

https://youtu.be/bQBDjEWy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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