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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메모

이제는 죽을 수 있어요


중고책방의 가치들 중 하나는 현재로서는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78년에 출판된 <프루스트/뜨거운 삶>도 그중 하나다. 당시 1700원이었던 책을 일 년 전에 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오래된 희귀본일수록 더 비싸다.
물론 본서는 2000년대 중반 즈음에 재출판된 바 있다.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남은ㅡ누렇게 변색된 이 중고책과 바꿀 생각은 없다. 오래 된 책은 빛바랜 종이가 발하는 특유의 구수한 내음을 품고 있다.

유명한 일화이지만, 마르셀 프루스트는 죽기 8년 전에 코르크판으로 외부의 소음을 차단한 방안에 칩거하여 죽기 직전까지 집필만 했다.그렇게 하여 탄생한 책이 가독성이 낮기로 유명한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프루스트는 방대한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감회를 그의 전속 간호사이자 하녀였던 셀레스트에게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나의 셀레스트, 말해 줄게요. 굉장한 뉴스예요. 어젯밤, 난 <끝>이라는 말을 썼답니다. 이제는 죽을 수 있어요.(...)중요한 것은 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내 작품은 이제 출판될 수 있어요. 나의 일생을 바친 것이 헛되지 않았어요."

언젠가 '이제는 죽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언가를, 현재 추구하고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굉장한 뉴스예요. 어젯밤, 난 <시작>이라는 말을 썼답니다"하고 말할 수나 있다면 다행일 텐데, 실상은 멍~때린 채로 속절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다. 슬럼프다.

이제 겨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2/11 분량 정도 되는 <스완네집 쪽으로(총2권)>를 다 봤다. 전화번호부보다 약간 재미있는 <스완네집 쪽으로>의 제1부 <콩브레>를 완독할 수 있다면 세상에 보지 못할 소설책은 한 권도 없다. 이 뚝심(?)으로 이제 두 번째 이야기인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서(총 2권)>를 독파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든다. 그게 꼭 소녀시대 아가씨들의 그늘에 파묻힌다는 망상을 유발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경험한 바 있는 기이한 현상에 관한 해석(?)이 나온다. 그것만으로도 일독할 가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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