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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잡글쓰기

긍지는 화조차 내지 않는다 "즉각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일상의 삶에 대해 그렇지 않은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다." 철학자 김용석의 말이다. 아마 그다지 참신한 견해는 아닐 거다. 조직적인 컨닝의 결과 이름이 '나체' 혹은 '누드'로 바뀐 한 철인은 전자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 군상을 일러 '시장의 파리'로 일축한 바 있으니까. 김용석의 말에서 '철학'의 자리에 '예술'을 넣어도 무방할 거다. 약 2400년 전의 한 철인은 "(인생의) 행위 전체는 필요한 것과 유용한 것을 지향하는 행위와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는 행위로 나누어진다"고 했단다. 그가 '유용한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파리떼로 치부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유용한 것'에 대비되는 것으로 '아름다운 것'을 자리매김 했다는 것은 눈.. 더보기
교양인 몇십 년 만에 다시 본 영화, .어렸을 때 본 영화들 중에 가장 기억나는 영화는 1940년에 제작된 존 포드 감독의 와 1954에 제작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거지 같은 운송수단(폐차 직전의 트럭과 수레를 매단 오토바이)으로 길을 떠난다는 거다. 물론 이 생계를 위한 유랑에 낭만적인 요소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철이 안 들었던 탓이었겠지만) 어렸을 때는 이런 동가식서가숙의 삶이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꽤나 근사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계몽사에서 출판한 전집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토베 얀슨의 와 월터 브룩스의 였다. 이 두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길을 떠난다. 의 경우 무민들이 대체로 여행과 모험을 즐기지만 역시 유랑을 밥먹듯이 하는.. 더보기
기타를 통해 범신론을 깨치다 현재 습도 50%. 악기에게 있어 최적의 습도다. 그런데 최근 내 모든 클래식 기타들은 메마른 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적정습도 45~55% 사이에서 보관했음에도 그런다(케이스 안에 오아시스 습도계를 장착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줄이 맛이 가서 그런가 하고 교체해 봤지만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 탄현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댐핏을 가동해봐도 별반 효과가 없다. 하도 답답하여 서XX 기타 제작가 님과 통화도 해봤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원인을 파악하기는 힘들 테다.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혹시 내 몸 속에 나쁜 기운(예컨대 음란마귀의 기운)이 있어서 기타가 그것을 감지하는 건 아닐까? 내게 있어서 클래식 기타는 성질 더럽고, 아주 까탈스러운 '미친 女ㄴ'과 같다(여성 비하라.. 더보기
비움 오전에 먹방 를 보는데 셰프 백종원 아저씨가 전국의 유명한 가게의 떡볶이를 시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욕망은 원래 타자를 쫒아가는 법. 아점으로 떡볶이를 선택하고 근처 가게를 찾았으나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직 문을 안 열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에 가서 떡볶이를 주문했으나 한 입 먹는 순간 이건 뭥미...맛이 없으면 양이라도 많든가. 아쉬움에 결국 직접 요리해 먹기로 한다. 떡볶이 육수를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으나 멸치가 없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먹다 남은 국수장국도 없고 마당에 진짜 개똥만 가득하다. 포기하려는 순간, 냉동실에서 며칠 전에 사둔 냉면 육수를 발견한다. 문득 애청하는 프로그램인 '격식 파괴 요리쇼'에 등장했던 무수한 격식 파괴 요리들이 떠오르며 그 실험정신에 힘을 얻는다.. 더보기
딜레마 창고에 맥심 티오피 커피가 한 박스나 있다. 무더운 공간에 두다보니 미지근해져서 마시기에 꺼려진다. 게다가 냉장고에 얼려놓은 얼음은 하나도 없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편의점에서 얼음컵을 하나 사왔다. 얼음컵에 부어넣은 커피 앞에서 잠시 딜레마에 빠진다. 1.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하면서 미각적 쾌락을 연장하자니 그 시간에 비례하여 커피의 농도가 얼음의 용해로 인해 점점 흐려져 맛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2. 원샷하면(한 번에 후루룩 다 마시면) 커피의 맛은 보장되겠지만, 미각적 쾌락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난 1번을 택한다. 역시 '굵고짪게'보다는 '얇고 기일~~~게.' 서머싯 모옴은 자신의 단편 소설 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 레드와 샐리의 슬프고 열렬한 사랑을 이.. 더보기
외팔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아래의 사진은 1983년 4월 1일의 일기. 오른손에 깁스를 한 탓에 왼손으로 글씨를 쓴 것이다. 32년만에 다시 외팔이 생활을 하려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라면을 끓여 먹으려니 라면 스프 봉지 뜯는 것조차 버겁다. 왼손으로 잡고 이빨로 뜯으려니 스프가 쏟아져버릴 것 같다. 가위를 이용하려니 왼손으로 가위질이 될리 만무하다. 결국 발가락까지 동원해야할 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깁스 안쪽의 피부에 불현듯 닥쳐오는 가려움이다. 상처가 생겨 덧나면 큰일나니까 풀어 헤친 철사 옷걸이 따위를 쑤셔넣어서 긁지말라는 의사 쌤의 경고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재난(?)보다 일단 발등의 불을 끄는 게 시급하다보니 결국 가느다란 것이면 그 무엇이든 쑤셔넣어 마구 긁적이게 된다. 얇은 빗이나 젓.. 더보기
짐 정리 중에 1. 이삿짐 정리 중에 발견된, 개발새발 끄적인 글로 가득한 종이 한 장. 10년 전 즈음에, 무명 악사의 전락을 다룬 임순례 감독의 영화 를 본 후 참담한 마음에 몇 개피의 담배를 태우며 옮겨 적은 영화 대사들이다. 알아볼 수 있게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예술이구만…이 친구하고 나하고는 42년생 동갑이거든. 근데 이 친구는 28세에 요절했는데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산다는 게 한심하지 않아? 나 28살 때 뭐했는지 알아? 남편 월남 보내놓고 바람난 아줌마랑 캬바레에서…에이, 관두자." "뭘 결혼씩이나 하냐. 그냥 좋다가 마는 거지. 그래도 그때(스쿨 밴드 생활하던 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야, 그 여자 너 가져라. 난 아무것도 필요없다.. 더보기
웅변 영화 중에서 창밖 학원으로부터 어떤 초딩의 웅변 연습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다고 이 연사는 힘주어 외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서구 민주주의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자각과 반성으로 출발했다'는 그 유신 시절에도ㅡ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렸던 '국딩' 시절에도 웅변 그 특유의 어투가 몹시 거슬렸다. 과장된 어투에 함몰된 진정성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억양의 '오버질' 자체가 부담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오글거렸다.'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지나치게 인위적이게 '오버 떨고' 획일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은 이미 국딩 시절부터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트로트 창법이나 일부 젊은 가수들의 '오버질' 창법(노래 가사는 단지 이별을 말하.. 더보기
묘혈을 파고 꽃구경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라고 시인 엘리어트는 에서 썼다. 잔인하긴 깨뿔…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해의 그 다음 해에 처음으로 그 시를 접하고는 이렇게 무지(無知)의 콧방귀를 뀌었다. 봄에 자살자가 많다는 사회학적 팩트가 있건 말건 4월은 벚꽃이 필 뿐만 아니라 벚꽃만큼 화창한(그러나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새내기 대딩녀들이 주위에 만개하는 계절이었으니 잔인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시에 잔인한 달은 외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었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보던 5.18의 참상을 총학 측에서 15.2 X 20.3cm의 컬러사진에 담아 당시 동아리방이 있었던 예술관 앞 도보에 10m도 넘게 전시해 놓았던 통에 그날 점심은 다 먹었다. 그 사.. 더보기
시간은 깡패 대학 동창으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통화 후 잠시 추억이 방울방울지다가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오래전의 앨범을 간만에 꺼내들었다. 책장 구석에 오랫동안 쳐박아 둔 탓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다. 아래의 사진은 1학년 겨울, 동아리방에서 루이즈 피포의 을 연습하는 장면이다(뭐, 그렇다고 당시에 그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 이른 1학년 봄, MT 갔을 때 미스코리아 비스무리한 '미스 화학' 뽑기 대회(?)에 타의에 의해 억지로 참가했던 적이 있는데, 이 여장 남자들의 사진은 대회(?) 직후에 찍은 거다. 그 당시 나는 176cm의 키에 몸무게가 59kg이었더랬다. 날씬했던 덕에 2등은 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아마도 부상(副賞)으로 브래지어를 받고 나서는.. 더보기